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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래빗: 전쟁 속 아이의 순수와 모순의 초상

by 슈리슈리슈 2025. 8. 22.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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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조래빗 포스터

 

영화 「조조래빗」(2019)은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연출한 독특한 블랙코미디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나치 독일을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는 나치에 세뇌된 열 살 소년 조조와 그의 상상 속 친구인 히틀러, 그리고 집에 숨어 있는 유대인 소녀 엘사 사이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과 사랑, 이해가 어떻게 싹틀 수 있는지를 그려낸다. 통상적인 전쟁 영화가 보여주는 처참한 참상과 영웅주의의 대비가 아니라, 오히려 조조라는 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이념과 편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이들이 그것에 얼마나 쉽게 물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유쾌함 속의 날카로운 풍자, 그리고 감동적인 휴머니즘이 어우러진 이 영화는 코미디와 드라마의 경계를 오가며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특히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조조의 심리 세계는 단순한 성장 영화로 보기엔 너무나도 깊이 있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어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아이의 순수함과 편견이 충돌하는 서사 구조

영화는 열 살 소년 요하네스 베츨러, 일명 조조가 나치 청소년단 히틀러유겐트에 가입하며 시작된다. 그는 나치를 신봉하며 ‘훌륭한 독일 소년’이 되기를 원하고, 상상 속에서 자신을 지도하는 친구로 아돌프 히틀러를 만들어낸다. 물론 이 히틀러는 실제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조조의 내면이 만들어낸 환상으로, 아이처럼 철없고 충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조조는 어느 날 자신이 살아온 세계관을 뒤흔드는 존재를 집 안에서 마주하게 된다. 다락방에 어머니가 몰래 숨겨놓은 유대인 소녀 엘사가 그것이다. 처음엔 유대인을 괴물로 여겼던 조조는 점차 엘사와 대화하고 교감하면서, 자신이 배워온 것이 단지 증오에 기반한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는 어머니 로지가 반체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자신이 믿던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조조의 내면 변화는 상상 속 히틀러의 변화로도 묘사된다. 처음에는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웠던 히틀러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점점 히스테릭하고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며, 조조의 불안과 분열을 상징한다. 이와 함께 조조는 히틀러와 상상의 관계를 점점 끊어가고, 현실 속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가치를 배우게 된다. 이러한 내적 변화는 단순한 캐릭터의 성장이 아니라, 전쟁이 어떻게 한 아이를 세뇌시키고, 또 어떻게 다시 깨어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엘사와의 관계, 어머니의 죽음, 친구 요키와의 우정, 그리고 폐허가 된 마을의 모습은 모두 조조가 인간성과 사랑의 본질을 깨닫는 여정의 일환으로 기능한다.

결말에 담긴 메시지와 영화적 장치의 해석

영화의 결말은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조조가 엘사에게 독일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거짓말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는 엘사를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진실을 숨기지만, 곧 양심의 가책과 감정의 동요 끝에 진실을 말하고 그녀를 자유롭게 내보낸다. 이 장면은 조조가 스스로의 감정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선택은 더 이상 나치 이념이나 타인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다. 그 후 엘사와 함께 문을 열고 폐허가 된 거리로 나오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무언의 희망을 나눈다. 마지막 장면에서 춤을 추는 모습은 전쟁이 끝났음을 알리고, 이제 두 사람 모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음을 상징한다. 특히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춤'은 자유의 은유다. 어머니 로지는 종종 춤을 추며 자유롭고 따뜻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조조가 마지막에 춤을 추는 것은 단지 흉내 내기가 아니라, 어머니가 남긴 자유와 사랑의 가치를 조조가 계승했음을 뜻한다. 또한 상상의 히틀러와의 결별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조조는 히틀러를 발로 차내며, 더 이상 이념이나 환상에 기대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이 장면은 단순히 코미디가 아니라, 극단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성장과 자각을 묘사한 중요한 전환점이다. 또한 영화 속에서는 색감과 조명, 음악 역시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처음엔 따뜻하고 밝은 색감이 사용되다가 전쟁의 현실과 죽음을 접하면서 점차 어두운 색으로 변화한다. 이는 조조의 세계관 변화와 내면의 성숙을 시각적으로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음악 역시 대중적인 팝을 독일어로 번안해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통적 전쟁 영화 문법을 뒤엎는 동시에 아이의 시선을 강조하는 데 일조한다.

풍자, 감동, 성장 서사가 빚어낸 강렬한 잔상

「조조래빗」은 전쟁이라는 끔찍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이의 시선을 통해 삶과 사랑, 편견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작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블랙코미디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인물의 정서와 메시지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과장된 연기와 유머로 전쟁의 광기를 희화화하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 숨은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절묘하게 녹여낸다. 그 결과 관객은 웃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이 먹먹해지고, 결국 조조의 선택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배우 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내면 연기를 보여주며 조조라는 복잡한 캐릭터를 완성시켰고, 스칼렛 요한슨은 단순한 어머니상을 넘어 자유와 저항, 사랑의 상징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또한 샘 록웰, 토마신 맥켄지, 아치 예이츠 등 조연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균형감 있게 극을 지탱해주었다. 물론 일부 관객에게는 전쟁이라는 비극을 코미디로 다뤘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전쟁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그 황당하고 어리석은 본질을 아이의 상상력을 통해 드러낸다. 조조는 우리 모두가 가졌던 순수한 믿음, 때로는 잘못된 신념을 상징하고, 그가 변해가는 과정은 우리가 세상과 타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지를 되묻는 여정이 된다. 「조조래빗」은 단지 전쟁 영화도, 코미디도, 성장 영화도 아닌 그 모든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현대적 우화’이며,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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